아래 글에 덧붙여, 글쓴 양반의 태도를 보니 생각나는 일화.
문제의 그 글의 덧글란을 좀 둘러보니, 글쓴 원작자가 독자들의 덧글 몇개에 답글을 달아놨던데, 좀 많이 가관인 답글이 있더군요.

저걸 보고 문득 생각난 일화=ㅅ=



약 7년 전, 2002년에 있던 일이었다. 나는 그때 미국 워싱턴주 스포캔에 교환학생으로 머물고 있었는데, 파란만장한 첫 1개월 끝에 호스트 가정을 옮기고 난 지 얼마 안 된 터라 새 호스트 가족과의 관계가 새롭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했던 그런 때였다. 새 호스트 가족들은 전형적인 주류 미국인식 배려심으로--"한국에서 교환학생을 들였으니 얘 한국음식도 해줄겸 한국음식을 한번 해먹어보자!"--나를 데리고 한인이 운영하는 식료품점으로 가서 김치와 이런저런 식료품을 사들였고, 그날 저녁은 인터넷에서 찾아낸 레시피로 만든 코리안 바베큐(한국식 갈비, 불고기 등의 미국쪽 통칭=ㅅ=)가 되었다. 고기 굽는 것은 요리 아주 잘하는 호스트 대드--석쇠등에 고기를 굽는 것은 미국 주류사회에선 남자들의 일로 보통 여겨지며, 보통 남자들이 더 잘하는 경우가 많음--가 해서, 한국요리인 갈비로서는 좀 미묘했어도 맛은 좋았지만--

고기와 함께 접시에 담긴, 식료품점에서 사온 김치가 문제였다. 김치랍시고 사온 것이 배추김치 주제에 백김치마냥 희여멀건하고 고춧가루도 없는데다, 젓갈을 쓰긴 했는지 감칠맛이 하나도 없는, 말 그대로 "맵기만 한" (엄밀히 말하자면, 맛이라고는 매운맛밖에 없는데 사실 별로 맵지도 않은) 김치였던 것이다. 중학교때 도시락 싸가면 다른 반찬보다도 급우놈들의 표적이 되던, 솜씨좋은 이모들이 담아다 주는 집김치는커녕 한솥 도시락 김치와도 비교를 불허하는 그 허접함에 내가 기막혀하고 있을 때, 내 기색을 눈치챘던지 호스트 대드가 말을 걸어왔다--"김치 어때? 제대로야?"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김치가 맛없었어도 그래도 저 사람들이 날 배려해서 한국 식료품점까지 가서 사온 건데, 어떤 방식으로든 립 서비스를 했어야 했지만... 그때 난 중2병이라는 치명적인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중 2에서 겨우 1년 지난 중 3(!!!), 인터넷이든 신문이든 어디서 주워들은 잡지식을 떠들 줄은 알아도 인간 관계에서 배려심이라던가 사회성이라던가하고는 영 관계가 없었던 때였던 것이다(이제 와서 얼마나 나아졌냐고 물으면 할말 없다만).

한국인은 생선도 많이 먹고 어려서부터 젓가락질도 하고 조기교육도 많이 받고 단군의 후손이기도 하고 얼라때 아름다운 동요도 많이 부르고 국민체조도 하고 교사들에게 쳐맞아보기도 하고 유대인 벤치마킹해서 탈무드도 좀 읽어보고, 어쨌든 잘난 족속인데 잘난 짓도 많이 해서 우리 말고 세상에서 제일 잘난 족속인 유대인들만큼이나 IQ가 높았는데! 그 우수한 한민족의 건강을 유지해주는 원동력은 배추김치가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배추김치라는 위대한 식품을 모독하는, 이 배추김치의 형상를 한 배추김치라는 식품에 대한 추잡한 패러디와 조롱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미국인들이 배추김치라는 위대한 식품(이건 아직도 믿고 있음=ㅂ=)을 이딴 허접한 푸성귀무침으로 기억하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호스트 가정 얼라들이 맵다고 캑캑거리는 상황에서는 특히!

즉, 내 대답은 단호했다=_= "이런 건 김치라고 부를 수 없죠. 우리 집 김치가 훨씬 맛있음'ㅅ' "

물론 나의 단호한 대답은 호스트 가족중 적어도 한 명의 지지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 한 명은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데 주저없어서, 그만큼 그 표현을 신중하거나 정치적으로 적절하게 고르는 데는 영 재능이 없는 호스트 맘이었는데, 그녀는 내 대답을 정말로 어이없게 받아들였는지, 진심으로 황당하다는 듯이 내게 이런 훈계를 했다.

"It was made by a Korean woman."


"그건[김치] 한국 여성이 만들었잖아."



난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시점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 기간은 약 9개월이 남아 있었다. 다난한 9개월이었다.




P.S.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인이 쓴 사회평론" 이랍시고 조갑제 옹 최근 글들을 던져주면 참 볼만할듯(...)

P.S.2.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첫 1개월은 매니저 집에 머물면서 밤새 인터넷 폐인질(...)을 하다가 걸리질 않나, 첫 호스트 가족과 이라크 침공 얘기를 하다가 "전쟁만으론 테러근절 못하니 테러리스트가 나오는 가난한 국가들을 좀 지원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테러리스트가 되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냐" 라고 했다가 테러리스트 국가를 지원해야 한다고 알아먹은 첫 호스트 가정 부부한테 테러리스트 동조자라고 찍히질 않나, 결국 프로그램에서 쫒겨날 뻔하지 않나... 하여간 이래저래 굉장한 시기였는데, 저 일화만큼은 첫 1개월의 사건들만큼이나 인상이 강하게 남더군요.

P.S.3. 사실 그 호스트맘은 불행한 과거를 딛고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간, 존경할 부분이 많은 사람인데, 성질이 좀 급하고 말이 너무 빨리 툭툭 나오는 편이라=_=

P.S.4. 하지만 보수적인 미국 주류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인식은 딱 저 수준이라고 보셔도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P.S.5. 혹시 인용한 덧글하고 이 일화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하실 분들을 위하여.

"미국 사람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니까 미국 사회에 대해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겠지!"

"한국 여성이 만든 김치니까 정확하게 제대로 만들었겠지!"

둘이 똑같은 수준이거든요.
by gforce | 2009/09/19 16:33 | Gibberish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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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harlie at 2009/09/19 19:01
마지막 두줄이 모든것을 다 요약해 주십니다. :)
Commented by gforce at 2009/09/21 14:54
하하, 제가 글을 잘 못 쓰는지, 요즘따라 사람들이 글을 잘 못 읽는지 마지막에 요약을 안 하면 꼭 못 알아든는 사람이 생기더라고요:-)
Commented by dunkbear at 2009/09/19 19:32
등잔 밑이 어둡다거나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는 속담은 그래서 진리.
Commented by gforce at 2009/09/21 14:55
정말 그런듯.
Commented by 언럭키즈 at 2009/09/19 20:51
http://www.journalog.net/nambukstory/15357
이런 식으로 나쁜 것 들만 강조한 다큐멘터리만 골라 보여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마이클 무어가 5개, 시대 정신이 2개..
Commented by gforce at 2009/09/21 14:56
Loose Change만 해도=_=
Commented by 엘트 at 2009/09/19 23:56
원작자가 쓴 덧글을 보니 원작자의 수준도 알만합니다. 한국에서야 좀 잘나신 분 같은데 미국에서 잘난대접을 받지 못하니 얼마나 억울하셨겠습니까. 그 자가 내놓는 팩트(인 척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다큐멘터리라는 사실은 매우 유쾌했습니다.


.............저런 글을 퍼다놓고 단순히 '관점의 차이'로 치부하고 옹호하는 그 친구라는 사람도 퍽이나 알만합니다만.
Commented by gforce at 2009/09/21 14:56
지인분 이글루에서 만난, 공중파 다큐 몇 개 보고 아랍-이스라엘 문제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이 생각났습니다=_= 하여간 그놈의 영상매체가...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9/09/20 00:10
한국인이니까 북한에 대해서 좀 잘 알겠지[...] 같은 이야기는 저도 종종 듣습니다만, 한국인이니까 더 몰라야 하는게 많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요 -_-;;

어쨋든 테러리스트 취급받으신거 ㅊㅎ...가 아니고, 합리적인 대안은 그것이 '합리적이라서 까이는 것'임을 절실히 깨닫고 갑니다 -_-
Commented by gforce at 2009/09/21 14:57
No good deed goes unpunished.
Commented by 월광토끼 at 2009/09/20 09:32
그 열개쯤 되는 다큐멘터리래봐야 기껏해야 모큐멘터리겠죠 -_-
Commented by gforce at 2009/09/21 14:57
본인들은 진지하게 만들었으니 다큐멘터리임!(펑)
Commented by 狂猫 at 2009/09/20 17:23
...아니 저도 김치 만들 줄 안다능! [이게 아니잖...]
근데 그 10개짜리 다큐가 실은 10부작 BOB였다면 그거 나름대로 신선할텐데 말이지요 ㅋ
Commented by gforce at 2009/09/21 14:5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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